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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특별기획 한국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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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품정보
  • 화면 : Fullscreen 4:3, NTSC
    오디오 : Dolby Digital 2.0
    더빙 : 한국어
    자막 : -
    지역코드 : Region 3
  • 상품상세설명
  •  

    [KBS특별기획-한국전쟁]DVD

     

    [상품정보]
    상품명 : KBS특별기획 한국전쟁 DVD
    언  어 : 한국어
    오디오 : 돌비 디지털 2.0
    구  성 : 디스크 10장 (1편~10편)
    출시일 : 2010년 7월 19일
    정  가 : 96,800원(부가세포함)
    DVD기획 / 제작 : KBS미디어

     

    60년전 한반도에서 일어나 38개월간 지속되었던 비극적인 전쟁!!!
    한반도에 전혀 예기치 못했던 민감한 의미에 국경만을 남긴 채 승자도 패자도 없이 중단되어 버린 한국전쟁에 관한이야기.

    전 세계 아카이브를 동원해 한국전쟁의 기원 전개과정 휴전이후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을 방송사상 최초로 객관적 시각에서
    정리함으로써 전쟁에 대한 이해의 폭을 확대 시켰다.
    뿐만 아니라 전쟁세대와 전후 세대간 인식의 격차를 좁히는데 크게 기여함으로써 전문학계 및 일반 시청자에게 큰 반항을 불러일으켰던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한국전쟁>은 풍부해진 자료들과 함께 생생한 증언 한국전쟁 관련 학계 전문가들의 설명이 더해져 한국 상황과 세계정세를 객관적으로 분석하여
    모든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한국전쟁의 교과서가 될 것이다.

     

    제1편 분단

    한국전쟁은 왜 일어났는가?
    美蘇 국제적 세력분할 구도에서 한반도의 운명은 어떻게 결정지어지는가.
    희망의 20세기. 그러나 전쟁의 20세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일본이 물러간 한반도는 미국과 소련이라는 두 강대국 세력 분할의 장이 된다. 스스로 제 운명을 결정할 힘을 가지지 못했던 한반도에 불어온 미소대결이라는 국제양상은 한반도를 역사의 회오리 속으로 몰아넣는다.

     

    제2편 전쟁의 시그널

    서울을 수도로 한 두 개의 정부 수립.
    38선을 두고 마주한 남과 북,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다!

    1949년, 38선에선 이미 작은 전쟁이 시작되고 있었다. 미소군의 철수로 남북의 대결 무대가 된 38선. 1949년부터 1년 반 동안 38선 부근에선 무려 750건이 넘는 전투가 벌어졌다. 전쟁의 신호였다.
    1950년 1월, 북한, 소련, 중국의 공산주의 삼각동맹이 형성됐다. 김일성은 스탈린과 마오쩌둥과 함께 은밀히 전쟁을 준비한다. 전쟁은 카운트다운만을 남긴 상황. 당시 북한의 남침 정보는 무수히 쏟아졌다. 한국전쟁은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왜 한국정부와 미국은 그 어떤 대비도 하지 않았던 것일까.

     

    제3편 폭풍

    폭풍처럼 다가온 50년의 여름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암호명 '폭풍'. 한국군은 제대로 방어할 새도 없이 무너졌다. 북한의 기습, 미아리 방어선의 붕괴, 한강교 폭파. 6월 28일 새벽 5시, 인민군의 서울 입성. 개전 3일만이었다. 이어진 북한의 공격은 약 1달 만에 경상도의 일부를 제외한 전 남한을 장악했고 1950년 한반도의 여름은 '폭풍'처럼 몰아친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든다.

    영천 수복과 함께 전쟁의 위기는 한차례 물러가는 듯 했다. 6월 25일 개전부터 치열했던 50년 여름에 대한 역사적 기록. 그러나 전쟁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제4편 북진

    D-DAY, 1950년 9월 15일. 작전명 '크로마이트'. 인천상륙작전.
    한국전쟁의 새로운 반전이었다.

    인천에 상륙한 UN군이 서울을 수복하는 데 걸린 시간은 13일. 인민군은 강렬하게 저항했고, 이로 인해 UN군은 인천에서 서울까지 가는 데 13일이 걸렸다. 이 기간 동안 인민군은 남한 내 주요 병력을 철수하고 주요 인사들을 비롯한 각종 서적과 문서들을 북으로 이송시켰다.

    9월28일 처음의 전선을 회복한 UN군과 국군은 38선 이북으로 진격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미국국가안전보장회의의 북진 결정과 함께 UN군과 국군은 평양을 탈환하고 압록강까지 진격한다.


    제5편 후퇴

    10월 19일. 중국군이 드디어 압록강을 넘었다.

    미 국가안전보장회의의 결정으로 UN군이 압록강까지 진격하자 위협을 느낀 중국은 한국전 참전을 결정한다. 이로써 한국전쟁은 또 다른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뒤이은 소련 공군의 비밀스러운 참전. 중국군은 UN군이 이제껏 싸워왔던 적과는 전혀 다른 군대였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미국은 결국 원폭투하라는 극단적 처방을 심각하게 고려한다.

    이제 더 이상 한국전쟁은 한반도 남북간의 싸움이 아니었다. 동족상잔의 국내 전쟁에서 동서 진영의 여러 국가가 참전한 국제전으로 완벽하게 변모해갔다. 수많은 나라들의 이해관계가 얽혀있었다.

     

    제6편 또 다른 전쟁

    1951년 6월, 전쟁이 시작된 지 꼭 1년 만에 유엔군과 공산군은 38선 부근에서 다시 만났다. 양측은 더 이상 무력으로는 상대를 굴복시킬 수 없음을 깨달았다.
    휴전협상의 신호였다. 협상이 시작되기만 하면 전쟁은 곧 끝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협상은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포로 협상은 휴전회담의 최대 걸림돌로 떠올랐다. 전쟁은 수많은 포로들을 배출했고, 그들의 처리가 가장 큰 문제였다. 먼저, 공산측은 전원송환을 주장했고 유엔 측은 포로들의 자유의사에 따르자는 자유송환으로 맞섰다. 군사적 승리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도덕적 승리는 체제 우위를 증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제7편 전쟁의 그늘

    남한 정부의 임시수도, 부산. 가장 안전한 곳을 찾아 밀려드는 피난민들로,
    47만이던 부산인구가 순식간에 100만으로 늘어났다. 당시엔 갖춰진 집을 가진 사람보다 시레이션 상자로 만든 임시 집을 가진 사람이 더 많았다. 집이 없는 설움보다 더 큰 고통은 배고픔이었다. 종교단체에서 식량을 배급할 때면 으레 아귀다툼이 일어났다. 내가 먼저 살고 볼 일이었다. 굶는 날이 많아지자, 미군부대 음식쓰레기로 끓인 꿀꿀이죽도 먹을 만 했다. 사람들은 점차 피난살이에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제8편 정전

    1953년 3월 5일, 스탈린이 사망했다.
    휴전을 서두르지 말라고 지시하던 공산권 최고 통치자의 죽음. 중국과 북한은 이제 그만 전쟁이 끝나기를 바랐다. 공산 측이 먼저 움직였다. 겨우내 교착상태였던 휴전회담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치열하게 대립한 포로협상. 포로협상은 무려 18개월 동안 계속됐다. 결국 포로송환방법은 포로들의 의사에 따른 자유송환으로 결정됐다. 그러나 포로협상 과정에서 배제된 ‘또 다른 포로들(한국군 포로, 신 빨치산)’이 미제로 남게 됐다

    제9편 끝나지 않은 전쟁

    마침내 한국전쟁은 끝났다. 남과 북은 저마다 자기가 승리한 전쟁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해방직후 38선으로 분단됐던 한반도는 그 이름만 휴전선으로 바뀐 채 세계 유일의 분단국으로 남겨졌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결말이었다.

    경제 . 사회 . 문화등 모든 측면에서 개방화의 길을 선택한 남한과 폐쇄적인 독자노선을 걸으며 주체사상에 입각한 사회주의 체제를 형성한 북한, 두 정권은 서로에 대한 강한 부정과 대립을 통해 자신들의 정권 안정을 도모한다.

     

    제10편 에필로그-반성

    전쟁을 경험한 이들의 기억속에서 한국전쟁은 어떤 모습으로 각인되었나?
    그들에게 한국전쟁은 무엇이었나?
    전쟁세대의 목소리를 통해
    한국전쟁이 우리에게 남긴 교훈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전쟁이후 60년의 세월이 흘렀다.
    총을 들고 전쟁터를 누볐던 청년은 백발 성성한 노인이 되었다.
    피난길에 부모를 잃고 떠돌던 소녀는 그 또래의 손녀를 가진 할머니가 되었다.

    전쟁 세대들의 기억속에서
    한국전쟁은 어떤 모습으로 각인되었나? 그들에게 한국전쟁은 무엇이었나?

    낯선 이국땅에서 처음 마주친 고지전투의 기억은
    파란 눈의 노병의 꿈에서 지금도 ?고 ?기는 악몽으로 되살아난다
    살기위해 떠나온 고향땅, 다시는 가볼 수조차 없게 된 그 곳을 생각하면
    가슴부터 먹먹해져오는 사람들이 들려주는 전쟁의 기억들...

    그들의 사연들을 통해
    한국전쟁이 우리에게 남긴 교훈의 의미를 되새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