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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대한적십자사, 지금이 부수고 다시 태어날 때다
2004.12.31
※ 적십자 사보(2004년 11월1일자) 時論에 실린 김성호 사장님 글입니다
대한적십자사, 지금이 부수고 다시 태어날 때다
글 : 김성호 온라인자문위원장(KBSi 사장)
요즘 99년의 연륜을 넘어 100주년을 준비하는 대한적십자사가 곤혹을 비 맞듯 하고 있다. 명문가의 쇄락은 보기에 딱하고 안타깝기 짝이 없다. 최근 대한적십자사를 걱정하는 사람들의 속내가 그 모양새가 아닌가 싶다. 여론의 질타는 명확한 현실이고 냉엄한 사실이다.
살다보면 개인이던 기관이건 영광과 상처가 혼재하게 마련. 세상은 다 때(時)가 있게 되어 있다. 그래서 하느님도 부술 때가 있으면 지을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면 태어날 때가 있음을 갈파하셨다.
대한적십자사는 최근 창설 이래 가장 큰 소용돌이 속에 엉거주춤하고 있는 듯하다. 유례 없는 언론의 질타, 국민의 불신과 무관심이 두드러지고 있다. 무서운 것은 한번 잠적한 후원자가 다시 돌아오려면 명확한 신뢰의 물증과 장구한 시간이 요구된다는 사실이다.
지금 대한적십자사는 잃어버린 신뢰를 찾아오고 또 언제 터질지 모르는 지뢰밭을 제거하는 일에 몰두해야 한다. 전 구성원이 철저하게 뼈를 깎는 자세로. 지금이 대한적십자사로서는 도약의 시점, 다시 태어나는 몸부림이 가장 필요한 때이다. 따라서 대한적십자사는 지금, 부술 때이며 다시 태어날 때이다.
어떻게 부수고 어떻게 다시 태어날 것인가는 온전히 내부 구성원들의 몫이다. 분명한 것은 바깥을 탓하거나 소나기성으로 피해가거나, 밖에서 해결책을 구하면 늦어지고 미봉책이 되기 쉽다. 통렬하게 그 원인을 안에서 찾고 해결책도 안에서 모색해야 한다.
부수고 다시 태어나기 위한 첫째 조건은 재삼 강조하지만 구성원들의 자성과 자구 노력이 진정으로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우선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구성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원인을 분석하고 공감대가 형성된 대책을 마련하여 과감한 실행이 있어야 한다. 물론 자리 마련과 분위기 조성은 리더쉽과 상관관계가 있다. 아래에서부터면 더욱 좋고, 중간에서 위아래를 압박해도 괜찮다.
둘째는 시대를 읽는 눈을 가진 구성원과 시대를 끌고 가는 성장 동력이 존재하는가 하는 점이다. 세상은 뛰어가는데 혹시 구성원들은 마냥 걷기만 하는 건 아닌지, 냉철히 돌아볼 필요가 있다. 역사의 오램은 큰 자랑거리임엔 틀림없지만, 그 연륜으로 인하여 무덤덤한 업무처리 관행이 이미 뿌리 깊이 자리잡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세상은 객관적 냉정주의로 가고 있는데 여기는 주관적 온정주의로 가고 있는지 냉엄하게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셋째로 적당하게 소극적인 아마추어들이 공동체에 주축을 이루고, 핵심 세력으로 자리하고 있다면, 급변하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지 구성원들이 냉철히 분석하고 대비해야 한다. 적극적 프로폐셔널도 대처하기 어려운 세상에 소극적 아마추얼리즘으로는 안된다. 프로나 스타가 존재하지 않는 집단이나 조직은 미래가 없다. 공공적 성격의 기관들은 자칫 경쟁력이나 프로정신을 할인하거나 양해하는 경우가 많다. 목전의 살벌한 세상에서는 살아남기 힘들다는 사실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위기의식을 가져보자.
넷째 과거의 잘못된 관행과 느슨한 타성 등을 찾아내어 박멸하는 조직문화운동을 전개할 것을 권장한다. 조직문화는 그 조직 내 구성원들의‘일하는 방식’이다. 좋은 조직, 미래가 보장된 조직체는 일하는 방법이 효율적이고 합리적이면서 경쟁력이 있다. 오랜 역사의 공기업은 자칫 민간 기업적 마인드가 부족하여 퍼포먼스를 따지지 않는다.
다섯째 부채 인력이나 장악하지 못하는 조직이 있는지 점검하고 제거하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 사람은 자산이다. 그래서 사람만이 희망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어느 조직을 보면 사람이 부채인 경우도 있다. 구조조정은 사람이 부채일 때 단행된다. 물론 시대적 상황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기업은 살아남기 위하여 부채 인력을 덜어내는 작업을 끊임없이 추진한다. 조직은 장악되려고 존재하는 생물체이다. 조직을 장악하지 못하는 리더는 이미 부채이며 그런 리더가 많을수록 그 조직의 성과물은 미미하다. 나는 조그만 조직체의 경영자로서 이 부채인력을 덜어내고 조직을 장악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것이 경영자의 기본적 도리요 책무라고 믿기 때문이다.
‘99’를 넘어서‘100’이라는 역사를 자랑하는 대한적십자사! 신뢰와 영광의 시대를 이 계기에 다시 만들어가길 당부한다. 사막에서 수맥을 찾아 물을 길어 올리는 심정으로, 온실을 박차고 광야라는 험악한 세상에 나서야 한다. 세상은 이미 어제의 기후나 토양이 아니다. 그 옛날의 명성을 뒤로 해라. 이제 그걸 따져 무얼 하겠는가. 나는 젊은 날부터 중국 명나라 시대 장 호(張 灝)의 “돌에 새긴 생각”(몇 년 전에 한양대 정 민 교수가 펴낸 단행본 제목)가운데 「석가헌(夕佳軒)」이란 집 한 채를 가슴속에 품고 살았다.
“저녁이 아름다운 집, 사람은 저녁이 아름다워야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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